서울시 관악구을 국회의원 출마변 金聖浩기자(37회)

 

서울시 관악구을 국회의원 출마변

金聖浩기자

모태신앙인 저는 두 분의 딸을 낳으신 후 부모님의 기도로 아들쌍둥이를 하나님께서 주셨다. 큰아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둘째는 조국을 위하여 받치겠다고 서원했으나 큰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거역했고 다행스럽게 둘째는 공사에 가서 지금은 아시아나 기장을 하고 있다.

아버님은 원로장로님이시고 어머니는 은퇴권사님이다. 그런 환경 탓인지 모이면 신앙생활 이야기로 시작되었고 선택의 여지없이 신앙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교회를 학교처럼 의무적으로 출석하며 성장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살아 계신지, 신앙인은 비 신앙인과 어떻게 다른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지요. 엄한 부모님 때문에 교회 에서는 누구보다 착실한 교인의 모습을 갖추었지만, 일단 교회와 가정을 벗어나면 크리스찬에서 비크리스찬으로 옷을 바꿔 입고 담배와 술을 자연스럽게 접하며 자랐습니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고 자라면서 신앙인들에게 실망할 일 만 보였습니다. 특히 예민한 사춘기에 그런 일들이 집중적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나처럼 안과 밖이 다른 이중적인 신앙인을 많이 목격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에 관해서 부모님하고 처가-장인어른은 은퇴목사님이시다-와의 갈등과 아내하고의 다툼은 늘 있었지만 그럭저럭 나이를 먹고 그저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습니다. 제가 30대에 나름대로 꿈을 가지고 서울시 중구 의료보험조합 전산센터 노조지부장과 컴퓨터사업을 용산전자상가 단지 내에서 하게 됩니다. 6개월 동안 고생을 하며 최선을 다했지만 그만 망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는 자금 때문에 수없이 싸웠습니다.

아주 끝장을 내고 나니 더욱 허탈해지는데, 정말 견딜 수 없었습니다. 패배감, 좌절감에 대인 기피증까지 생겨 뒷골목만 해매고 다니다가 음악교사인 아내와 결혼을 했습니다. 예배를 빠짐없이 참석했지만 별로 큰 변화를 갖지는 못하고 나이를 먹고 때가 되어 결혼을 하게 되는데, 상대가 목사님 딸입니다. 그러나 워낙 완벽한 이중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신앙인인척 하는 데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자 우유값을 벌겠다는 마음으로 공무원생활을 시작했고 먼 친척의 아저씨가 부천에서 국회의원 2번 낙선, 여당시장 후보시 낙선 캠프에서 자민련부천시원미을 정책실장으로 일하면서 정치마약을 먹게 됩니다. 선거가 끝나고 시흥에서 초자 기자생활을 하다가 부천신문에서 일하게 됩니다. 지쳐버린 아내는 직장을 그만두고 외국으로 가버리고 저도 님 찾아 3년 동안 -사이판에서 1, 뉴질랜드에서 2-살게 됩니다. 고국에 돌아와 다시 기자생활을 하면서 정치에 입문하기 위해 절차탁마의 시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 삶을 살아오면서 절망스러운 때에 우울증에 걸려 극한상황까지 간적도 있고 술로 인해 자의반 타의반 여러 번 병원생활도 했다. 그 당시 필자는 기자생활을 하면서 지쳐 있는 상황이었다. 정치에 꿈을 가진지 어언 18, 나도 이제 애인을 두명 두었습니다. “조국, 정치두 단어 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 해진다. 저는 20033월에 입당한 당원이다. 나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전에 하던 대로하나님께 무릎 끊고 새벽마다 부르짖는 기도드린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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